유럽의 불명예. 바로 영국의 음식 문화다. 하지만 그건 ‘전통 음식’에 국한할 뿐, 절대 맛집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런던에 방문하기 전, 런던을 휘감은 흉흉한 소문에 현혹돼 캐리어의 한 칸을 신라면, 짜파게티, 햇반, 참치, 김, 통조림 깻잎, 볶음 고추장으로 가득 채웠던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그만큼 런던 맛집에 대한 기대감이 제로는 커녕 마이너스에 이르렀던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런던엔 맛집이 많다. (그만큼 믿어달란 뜻이다.) 웬만하면 평균 이상의 맛을 선사했던 런던 음식점 중 4곳을 선정해 소개한다. 예상 독자가 될 여행객들을 위해 주요 관광 동선에서 어긋나지 않는 곳들을 골랐으니 시간이 허락한다면 들려보길 바란다. 1. Parsons 먼저 소개할 곳은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에서..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무리가 내 앞에 파라솔을 편다. 무리 중 한 분의 겨드랑이에 꼿꼿이 고정되어 있던 돗자리는 마침내 자유를 얻어 모레 위로 놓인다. 거친 손길로 빳빳하고 팽팽하게 돗자리를 정리한 아주머니들은 일제히 신발을 벗어 네 곳의 모서리에 모셔둔다. 어제 오늘 합을 맞춘 게 아니라는 듯 완벽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걸 보니, 바다 나들이가 일상인 주민이 분명하다. 촘촘한 관광객 무리 속에서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아주머니 무리는 이내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해변에 울려퍼지는 쾌활한 댄스 음악과 곳곳에서 들려오는 재잘거림, 파도가 만들어내는 철썩거림의 합주로 인해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재밌게 하는지 알 수는 없다. 표정으로 비추어보건대 무언가 재밌는 이야기에 빠져 계시단 걸 짐작할 뿐이다. 수다..
런던엔 5가지 종류의 지하철이 있다. 1호선, 2호선 3호선과 같은 노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입구의 위치와 요금을 기준으로 분류해보면 내 기준 5가지다. DLR, Elizabeth Line, London Overground, London Underground, 그리고 National Rail까지. 처음 런던에 도착해 당황해 마지 않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런던 지하철에 대해 정리해본다. 01. 입구가 어딘데! [런던 여행/Day 0] 여러 상념들 in 히드로 공항 01. 안드로메다로 향한, 생각의 흐름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바닥에 붙어 있던 발을 지상으로 옮겨 익숙지 않은 냄새를 한 번 흡입했다. 낯설다. 시큰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가득 채우 janesongkkim.tistory.com 지난..
01. 안드로메다로 향한, 생각의 흐름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바닥에 붙어 있던 발을 지상으로 옮겨 익숙지 않은 냄새를 한 번 흡입했다. 낯설다. 시큰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가득 채우고 인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을 가득 채운다. 비로소 한번도 와보지 않았던 나라에 왔다는 감각이 물씬 솟는다. 비행기가 한 시간 반이나 일찍 도착했다. 카슨은 아직 퇴근도 하지 않은 시간. 당연히도 공항에 서 기다리겠단 카슨은 없었다. 그 바람에 코스타 커피 앞에서 캐리어를 의자 삼아 잠시 엉덩이를 붙였다. 지친 두 다리에 휴식을 주니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공항을 탐색해보자. 눈에 띄는 건 출구 밖의 사람들이 출구에서 갓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다 격하게 부둥켜 안는 장면이 반복됐다는..
01. 아쉬움 한아름 안고서 절친과 함께 오지 못했다. 아, 그렇다고 그녀가 영영 오지 않는 건 아니다. 한 달 안에 우린 다시 몰타에서 만나겠지. 어쨌든 몰타에서의 생활을 처음부터 함께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한날 한시에 몰타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 건 너무도 아쉽다. 만약 그녀와 첫날부터 함께였다면 두려움이 제거된, 순수한 설렘만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경유지에서 혹시나 탑승구를 놓치더라도, 숙소에 도착한 첫 날 혹여 문이 열리지 않더라도, 초행길에서 길을 잃는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모든 모험을 함께 헤쳐갈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위안일 거다. 이 머나멀고도 낯선 땅에서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안전감이 기저에 있었을테니 말이다. ‘함께’라는 단어는 ’겁’을 ‘설렘’으로 바꿀 수 있는 어마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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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여행/Day 0.5] 런던의 지하철에 대하여 (+저렴하게 타는 꿀팁)
런던엔 5가지 종류의 지하철이 있다. 1호선, 2호선 3호선과 같은 노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입구의 위치와 요금을 기준으로 분류해보면 내 기준 5가지다. DLR, Elizabeth Line, London Overground, London Underground, 그리고 National Rail까지. 처음 런던에 도착해 당황해 마지 않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런던 지하철에 대해 정리해본다. 01. 입구가 어딘데! [런던 여행/Day 0] 여러 상념들 in 히드로 공항 01. 안드로메다로 향한, 생각의 흐름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바닥에 붙어 있던 발을 지상으로 옮겨 익숙지 않은 냄새를 한 번 흡입했다. 낯설다. 시큰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가득 채우 janesongkkim.tistory.com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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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여행/Day 0] 여러 상념들 in 히드로 공항
01. 안드로메다로 향한, 생각의 흐름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바닥에 붙어 있던 발을 지상으로 옮겨 익숙지 않은 냄새를 한 번 흡입했다. 낯설다. 시큰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가득 채우고 인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을 가득 채운다. 비로소 한번도 와보지 않았던 나라에 왔다는 감각이 물씬 솟는다. 비행기가 한 시간 반이나 일찍 도착했다. 카슨은 아직 퇴근도 하지 않은 시간. 당연히도 공항에 서 기다리겠단 카슨은 없었다. 그 바람에 코스타 커피 앞에서 캐리어를 의자 삼아 잠시 엉덩이를 붙였다. 지친 두 다리에 휴식을 주니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공항을 탐색해보자. 눈에 띄는 건 출구 밖의 사람들이 출구에서 갓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다 격하게 부둥켜 안는 장면이 반복됐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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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 3개월 살기/Day 2] 오랜 친구, 새로운 친구
01. 아쉬움 한아름 안고서 절친과 함께 오지 못했다. 아, 그렇다고 그녀가 영영 오지 않는 건 아니다. 한 달 안에 우린 다시 몰타에서 만나겠지. 어쨌든 몰타에서의 생활을 처음부터 함께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한날 한시에 몰타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 건 너무도 아쉽다. 만약 그녀와 첫날부터 함께였다면 두려움이 제거된, 순수한 설렘만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경유지에서 혹시나 탑승구를 놓치더라도, 숙소에 도착한 첫 날 혹여 문이 열리지 않더라도, 초행길에서 길을 잃는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모든 모험을 함께 헤쳐갈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위안일 거다. 이 머나멀고도 낯선 땅에서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안전감이 기저에 있었을테니 말이다. ‘함께’라는 단어는 ’겁’을 ‘설렘’으로 바꿀 수 있는 어마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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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 3개월 살기/Day 0] 비행기가 흔들린다.
01. 흔들어, 흔들려? 겨우 든 잠에서 깼다. 비행기가 흔들린다. 파리 땅을 갓 떠난 몰타행 비행기는 꽤나 흔들리고 있었다. '드디어!'라며 열망했던 해외 살기를 시작한 나를 대견해하면서도 오랜 비행에 너무도 지쳐 다시 조국의 안락함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내 마음처럼. 02. 목표 달성! 지금은 2022년 4월 30일. 작년 겨울부터 절친과 함께 몰타행 꿈을 꾸었다. 긴 휴식이 필요하다는데 극강의 공감대를 형성한 우리는 회사를 그만두고 드넓은 바다와 생기 넘치는 초록빛 잔디, 그 위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기 위해 지중해 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6개월 동안 생활비 긴축에 들어서며 몰타행 경비를 모을 계획이었지만, 이게 웬걸?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전 회사가 exit에 성공했다. '이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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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크로아티아] 탐험, 신비의 세계! - 자그레브
01. 탐험, 신비의 세계 크로아티아는 내게 신비의 세계다. 발칸 반도나 아드리아해처럼 크로아티아를 감싼 이름이 주는 낯섦도 분명 한 몫을 했겠지만 세계사를 다룬 책 속에서나 대학 시절 수업 속에서나 접한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였던 나라라는게 신비함의 9할은 차지했다. 가 대한민국 곳곳에 전달한 자연의 경이로움보다는 연방에서 독립한지 3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그들은 어떤 변화 속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겐 머나먼 과거의 역사처럼 느껴지지만 전쟁의 아픔과 극복은 그들에게 '현재'이기 때문이다. 이 궁금증을 충동적으로 풀 수 있게 도와준 대한항공에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직항을 만들어주고, 프로모션을 해줘서 고맙다. 02. 여독을 푸는 건, 여행 첫날도 마찬가지야. 여행을 마친 뒤에만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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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크로아티아] 구시가지 투어 - 자그레브의 아침과 로켓버거
01. 자그레브의 아침 집 안에 있더라도 창문 밖 풍경이 다르니 기분도 다르다. 다른 풍경에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은 왠지 모르게 더 청초히 빛나는 것 같다. 해야 할 일도, 가야 할 곳도 없는 아침은 여유롭다. 시차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괜스레 일찍 일어났다.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다시 잠들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자고 있는 희은이를 깨워 라면을 하나 끓여먹은 뒤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자그레브 한복판에 위치한 숙소에서 듣는 길거리의 웅성거림은 빨리 자그레브의 활기를 느끼러 나오라는 메시지 같았다. 02. 직장인이 여행하는 법 뇌라는 공장을 일주일에 다섯 번은 꼬박 돌린 값으로 한 달에 한번, 월급이란 대가를 얻는다. 균일하게 돌아가는 이 생활이 가끔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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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크로아티아] 구시가지 관광 - 스톤 게이트, 성마르크 성당, 메슈트로비치 아틀리에,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그릭 터널(Gric Tunnel)
04. 여행자에게 관광은 진리 구시가지의 입구, 스톤 게이트(Stone Gate)로 걸음을 옮겼다. 스톤 게이트엔 특별함이 있다. 1731년 발생한 큰 화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림을 지금까지 보호한다. 불 속에서 온전히 형체를 보존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그림을크로아티아 인들은 신의 가호로 해석했다. 그들의 보존은 순례자들의 발길을 모았다. 비가 그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은 쌀쌀한 날이었다. 오로지 스톤 게이트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림의 주위만 그를 둘러싼 촛불로 온기가 돌았다. 화재 이후 스톤게이트 안의 한쪽 귀퉁이에 마련된 제단에서는 몇몇 이들이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제단은 돌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문 안쪽에 자리 잡아 대낮에도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Pr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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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2일차] 프라하, 너와 나의 사실상 1일the Czech Republic 2017.12.16 01:22
[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프라하, 너와 나의 1일 - Part 1. (1) 01/ 30시간 동안 눈을 뜬 채로 정신없이 지나갔던 첫날을 뒤로하고. 둘째 날 아침. 에 나오는 주인공 마냥 기지개를 한껏 편 후 창문을 열었다. 빨간 지붕의 예스러운 건물과 상하지 않고 잘 보존된 돌바닥까지. 프라하성 근처에 위치한 첫 번째 숙소에서 보는 풍경은 옛 프라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이 색다르니 공기도 색달랐다. 기분이 시원하니 바람마저 시원했다. 10시를 알리는 성당 종소리에 맞춰 맞은편의 호스텔에서 나오는 관광객 무리를 창문에 기대 바라보았다. 나 역시 이곳에 있다는 게, 여기에 속해 있다는 게 벅찼다. 02/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내가 프라하에 왔다는 사실을 한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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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2일차] 프라하의 예쁜 쓰레기 샵 투어the Czech Republic 2017.12.16 01:39
[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프라하, 너와 나의 1일 - Part 1. (2) /Pylones, Flying Tiger 꽤 오랜 시간 서점을 탐닉했으니 곧바로 TESCO로 가기로 했다. 결심은 꽤나 잘 지켜지나 싶었는데 굳은 용단은 머지 않아 뒤엎였다. 우리의 느린 걸음과 TESCO로 향하는 길에 놓인 블타바 강 때문이다. 강을 지나 시내로 들어서니 우리는 또 다시 서로에게 묻지 않은 채 환상적인 일심동체가 되어 결심을 저버렸다. 먼저 PYLONES. 프라하에 도착한 후 처음 맞이한 예쁜 쓰레기 SHOP(예쁘지만 쓸모없는 아이템을 취급하는 상점을 부르는 우리의 은어)이다. 희은이와 보람이는 나중에 우연히 발견할 지도 모르는 예쁜 쓰레기 샵을 기대하며 지갑을 닫았고 참지 못한 나는 첫 눈에 반한 다이어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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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2일차] 굴라쉬, 스비치코파 그리고 아모리노the Czech Republic 2017.12.16 02:16
[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프라하, 너와 나의 1일 - Part 2. (1) 01/ 무려 3시간이었다. 탑승시간 3시간 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숫자겠지만 우리에겐 아니었다. 탑승 한 시간 전 공항에 도착, 부랴부랴 무사히 비행기 안 좌석에 안착했던 직전 2번의 여행에서 보건대 내 인생에서 역사적인 가치를 부여해도 괜찮은 숫자였다. 이런 과도한 의미 부여가 불행의 전초일 줄은 몰랐다. 탑승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본인에게는 자찬을, 서로에게는 갈채를 보내며 뿌듯해했다. 온몸으로 여유로움의 아우라를 발산하며 여행자 보험도 들고, 대한항공 발권 창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앉아 수다도 떨고, 그 사이 편한 속을 위해 화장실도 다녀왔다. 한국인이 어떤 민족인 지 망각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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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2일차] 카를교와 프라하성 야경the Czech Republic 2017.12.16 14:31
03/ 든든한 배를 안고 카를교로 향했다. 그렇게 예쁘다는 프라하 노을과 야경을 보기 위해서다. Amorino에서 젤라또를 기다리느라 노을이 지는 과정을 내내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야경으로도 충분했다. 사진으로 그 야경을 곧이곧대로 담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야경을 보기 위해 카를교로 모인 인파는 엄청났다. 다행히도 브릿지 난간에 자리를 잡아 여유롭게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열심히 셀카를 찍어대다 한동안은 말없이 야경을 감상했다. Walter Mitty: When are you going to take it?Sean O'Connell: Sometimes I don't. If I like a moment, for me, personally, I don't like to have the distrac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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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3일차]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the Czech Republic 2017.12.16 20:31
[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프라하, 너와 나의 3일 - 나에게 여행이란 사람마다 욕망을 분출하는 통로는 하나씩 있다. 내겐 여행이다. 01/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의 월터는 잡지사에서 16년을 보내고 있다. 16년 째 필름 사진을 현상하며 감흥 없는 삶을, 단조로운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그가 지루한 일상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다. '상상'이다. 현실에서는 이룰 수도, 저지를 수도 없는 일들을 상상하며 욕망을 분출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의 주인공 남자는 4년 간 전업 주부로 일하고 있다. 한국의 정서상 본인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주부로 머무르는 남자의 자존감과 존재감이란 희미할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젤리피쉬 주인공에게는 그렇다.) 그는 자신의 갈망이 의미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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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3일차] 프라하 속 문래동, 홀레소비치the Czech Republic 2017.12.17 17:07
[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프라하, 너와 나의 3일 - 본격 관광 타임 삼일 째, 우리가 돌아볼 곳은 Prague 7 District다. Holesovice(홀레 소 비치), Letna(레트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블타바 강을 기준으로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01. 홀레소비치에 대하여 Prague 7, 홀레소비치는 2010년 이전의 문래동과 유사하다. 철재산업이 발전했던 영등포구 문래동은 제조업 쇠퇴와 맞물려 함께 쇠락한다. 즐비했던 철공소가 사라지고 휑하게 빈 자리는 뜻밖의 계기로 활기를 찾았다. 홍대 혹은 대학로 일대의 젠트리피케이션. 높아만 지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난 예술가들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고 이들의 창의적인 활동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상업 지역으로 재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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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3일차] 맥주 홀릭들의 성지, Amazing Letna Parkthe Czech Republic 2017.12.17 18:26
03 /PageFive 운이 좋게도 첫번째 숙소에는 현지인이 2년 간 프라하를 탐색하며 엮어 낸 핫 플레이스 추천 책이 있다. 그 책에서 추천했던 곳 중 하나인 PageFive는 National Gallery에서 정말 가깝다. 우리는 서점을 참 많이 들렸지만 그렇다고 책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체코의 서점에는 꼭 곁가지 아이템을 판다. 그리고 그 아이템이 우리가 서점을 찾는 이유 중 80%를 차지했다. 보람이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고 희은이는 아트페이퍼를, (이걸 들고 한국에 돌아오느라 꽤 고생을 했다.) 나는 강아지가 괴기하게 그려진 에코백을 득템했다. (희은이랑 보람이는 맘에 들어하지 않았는데 나는 끝내 샀다.) 04/ Bistro 8 곧바로 이동한 곳은 Bistro 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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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4일차] 돈을 펑펑 뿌렸던 프라하의 핫플레이스the Czech Republic 2017.12.23 19:52
[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4일차] Ms. Shopaholic프라하의 흔적을 내 캐리어로! 이 글은 물이 흐르듯 돈을 쓰던 그 날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쓰고 있다. 01/ 체코의 물가 체코하면 '야경의 아름다움'을 바로 떠올릴 것이다. 야경이 1순위라면 '낮은 물가'가 2순위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체코=낮은 물가'라는 등식은 한국에 터를 두고 생활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체코인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체코의 물가는 낮지 않다. 체코는 2004년 5월 1일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체코와 함께 한날 한시에 EU 일원이 된 동기는 90년대 초 공산권에서 벗어난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키프로스 등 10개 국가다. 이후 동유럽 경제 전체가 상승세를 탔지만 유독 체코의 경제는 가파르게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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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4일차] 종이의 완벽한 변신 Papelote!the Czech Republic 2017.12.24 14:33
08/ Czech Design 프라하의 거리는 예쁘다. 무심코 걷는 길이 모두 장관이다. 팔라디움을 빠져 나오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프라하의 거리는 비오는 날에도 예쁘다. 프라하의 거리를 구성하는 상점도 예쁘다. 무심코 길을 걷다 한번 곁눈을 두면 그곳을 방문하게 된다. 프라하 여행 4일차. 이 날은 우연히 걷다 얻어걸린 상점 중 최고봉, Czech Design에 들렀다. 외관만 봐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CZECH DESIGN. 그때는 그저 예쁜 쓰레기 샵으로 이해했지만 알고 보니 디자이너와 회사를 잇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비영리 단체다. 2003년, 디자이너의 디렉토리 역할을 하는 포털(www.czechdesign.cz) 개설을 시작으로 잡지 발간, 전시회 및 콘테스트 개최 및 운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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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5일차] 해외 재택근무와 이사하는 날the Czech Republic 2017.12.24 23:11
01/ 해외에서 재택근무라고 내가 왜 그랬을까, 당시에는 참 많은 후회를 했다. 꼭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고객사에게 프라하 여행 5일차에 이메일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다. 너무 늦게 전달 일정을 잡으면 느직하다는 이미지로 각인될까봐. 그렇게 프라하 5일차 아침은 근무 일정으로 미리 결정되어 있었는데, 매일 아침 필스너 한잔과 커피 한잔을 즐기며 2~30분 정도 시간을 보냈던 Cafe Club Misenska에 자리를 잡았다. /Café Club Míšeňská앞서 한 시간 가량은 그간 밀린 이메일을 처리 하느라 정신 없이 보내고, 친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보람이와 희은이는 내가 일하는 시간 동안 카프카 박물관에 갔다.) 그 시간 동안 사색을 좀 했다고나 할까. 노트북을 덮고 옆을 보자 창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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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5일차] 제대로 즐긴 한끼 식사, 프라하의 맛있는 레스토랑the Czech Republic 2017.12.28 01:00
05/ 반갑다, James Dean! 레스토랑으로 걸으면서 낯익은 거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서서히 알아차렸다. 내 시야로 점차 들어오는 제임스딘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제임스딘을 다시 만나니 지난 여행이 떠오른다. 그때는 얼마 되지 않는 돈에 의지해 여행을 떠났다. 먼저 벨기에로 갔다. 유로존에 속한 국가라 아침 커피 한 잔을 즐길 때에도, 식사할 곳을 찾을 때에도, 쇼핑을 할 때에도 돈을 진창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체코, 프라하는 달랐다. 소윤이와 함께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고 하늘에서 국경을 건너 체코 땅을 밟으니 앞으로 남은 일정에 대한 근심을 떨치고 참 여행을 누릴 수 있었다. 프라하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쓴 곳을 꼽으라 한다면 단연 제임스딘이다. 프라하를 쏘다닌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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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6일차] 체코 속 베트남인, 그리고 또 쇼핑the Czech Republic 2017.12.28 19:05
01/ Jeseniova 50, 130 00 Praha 3, Czechia두번째 집은 확실히 주택가다. 밖을 온전히 가리지 못하는 반투명의 블라인드 사이로 햇빛이 은은히 들어왔다. 예배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도, 관광객 무리의 들뜬 얘깃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곳의 아침은 조용하다. 이사한 첫날 나는 거실 쇼파에서 잤다. 두번째 집의 거실엔 사면 중 두면이 테라스로 나갈 수 있는 통유리 창문이다. 그 사이로 긴 시간 햇빛의 습격을 받아 잠에서 깼다. 한국에서는 10년에 한 번 있을 일이지만 프라하에서는 매일 아침을 챙겨 먹었다. 그날도 일어나자마자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을 게 없었다. 두번째 집 근처에는 TESCO Express와 테스코에 버금가는 마트 브랜드 BiLLA가 있었는데 아직 장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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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6일차] 카페, 카약킹, 그리고 사요나라 핸드폰the Czech Republic 2018.01.01 01:47
06/ CAFEFIN이자 Pho Vietnam Tuan & Lan 며칠 전 어이없는 실패 후, 우리는 쌀국수 먹기 기행을 어떻게든 성공해내기로 마음 먹었다. 현재 위치에서는 가장 가까웠지만 그래도 Play bag에서 자못 거리가 있는 그 곳, Pho Vietnam Tuan & Lan으로 향했다. 여유롭게 걷다 도착하자마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얼핏 봐서는 베트남 레스토랑임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카페의 경관이다. 게다가 간판을 확인한 순간 판사가 내려치는 재판봉의 쾌활하고도 반복적인 그 소리가 내 귀에서 선명하게 들렸다. "CAFEFIN", 진짜 카페였다. '아닌데, 구글맵에서 확인한 현재 위치는 바로 이곳인데‥' 쌀국수를, 볶음밥을, 하다못해 스프링 롤이라도 먹고 있는 그 누군가를 찾기 위해 내부를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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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7일차] 비관과 낙관 사이, 나의 7일차와 카프카의 삶the Czech Republic 2018.01.09 22:56
01/ 세상엔 두가지 전망이 있다. 비관과 낙관. 이 둘은 한끝 차이다. 나는 물건에 관해서 부정적인 감정 쪽으로는 무디다. 흰 옷에 빨간 양념이 튀거나 비싼 핸드폰을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려도 '악!' 한마디와 함께 그 사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끝이 난다. 낙관적이라 살기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프라하 7일차 새벽 3시경, 내 핸드폰이 블타바 강물의 강력한 침입에 즉사하고 말았다는 걸 깨닫자 짜증이 밀려왔다. 처음으로 물건이 상하거나 잃어버렸을 때 분노에 휩싸였다. 마침내 프라하 여행에 대한 좋았던 기억이 나쁜 쪽으로 흘러갈 거라 비관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베를린행을 취소해야 했다. 혼자서 베를린에 떠나기로 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핸드폰에 의지할 수 없었다. 핸드폰에 모셔둔 기차표가 없으니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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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7일차] 체코슬로바키아의 옛 흔적이 남은 공간,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에 대해서the Czech Republic 2018.05.07 16:43
04/또 한번 쇼핑의 늪으로 팔라디움에 다시 들린 건 언젠가부터 내 관심을 앗아갔던 익숙한 페미닌룩 스타일의 낯선 브랜드, orsay 때문이다. 프라하 4일차, 첫 만남은 은은했지만 여운은 강렬했던 orsay에 7일차 쯤 다시 찾으니 역시나 '그' 옷을 하나 더 사야한다는 마음을 굳혔다. 옐로우(yellow)톤 베이스에 그린(green)톤이 가미된 큐트하면서도 페미닌한 슬리브리스 블라우스. (패션잡지톤 코스프레) 이미 하나를 사고 난 뒤, 약 사흘 간 이 블라우스가 나보다 더 잘 어울릴 누군가가 떠올랐다. 선물을 하자니 나도 갖고 싶고, 나만 갖자니 그 친구가 더 어울릴 것 같고. 고민 끝에 선물 용으로 하나 샀다. 같은 회사라 이 옷을 입는 날에는 꼭 서로 얘기하자는 당부를 잃지 않았다. 카프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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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7일차] 옛 흔적이 남은 공간, Cafe Kavarna와 Vysehradthe Czech Republic 2018.05.07 20:53
06/ Kavárna co hledá jméno첫번째 숙소에서 만난 프라하 핫플레이스 추천 책은 Kavárna를 이렇게 표현한다. 공장을 개조한 카페.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모자람 없는 수식어다. 서울에도 공장의 과거와 카페의 현재를 가진 공간이 더러 있다. 대림창고, 앤트러사이트, 카페발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카페들이 '공장'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하나의 느낌으로만 소비되지 않는 건 모두 다른 공장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대림창고는 정미소에서 카페 겸 작품 갤러리로, 카페발로는 철강 공장에서 카페 겸 가구 스튜디오로, 앤트러사이트 합정점은 신발 공장에서 오로지 카페 용도의 적요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서울에 있는 카페들도 뿜어내는 색깔이 이렇게나 다른데 프라하는 어떨까'하는 호기심에서 우리는 Ka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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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그때의 프라하 - 8일차] SEE YOU AGAIN,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the Czech Republic 2019.03.31 19:15
01/ 핫 스팟 추천. Bohempia 좋아하는 일도, 사랑도 언젠가 권태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쇼핑은 아니다. 반복적인 행위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그런가 싶다. 프라하 여행 내내 쇼핑을 즐겼지만 가시지 않은 쇼핑욕은 8일차 아침부터 빛을 발했다. 대마가 과연 인간에게 이로울 수 있을까? Tomáš Rohal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제시한 답은 'YES'. 그는 Bohempia를 창업해 근거를 제시했다. 마약으로 명성을 드높이고 있는 대마는 사실 인간 친화적(?)이다. 대마로 만든 원단은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다. 심지어 피부의 주적인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도 겸한다.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대마의 이로움을 티셔츠, 후드, 양말, 신발 등 각종 의류..
현수는 똑똑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 헤밍웨이의 책을 숙독했고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로마인 이야기' 전집을 독파했다. 이런 아이가 있을 수가. 그의 부모는 이렇게 생각했단다.현수의 아버지는 선비였다. 가난했으나 학식이 뛰어났다. 현수의 할머니는 아버지가 뛰어난 학식을 이용해 계층상승을 이루길 바랐다. 하지만 아버지는 시골교회의 목사를 택했다. 가난은 이어졌다. 시골 목사에게 사치였으나 아버지는 서재를 원했다. 제대로 된 살림 밑천은 없어도, 네 식구가 한 칸짜리 방에서 살 붙이며 살아도 책 욕심은 내려놓지 못한 아버지였다. '책 살 돈으로 냄비나 사지'라거나 '이 책들 좀 치워!'라는 엄마의 성화에 아버지는 서재가 있었으면 하는 소원을 입 한번 벙긋 하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는 동네 폐가를 직접 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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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과 이타심의 공생관계
/소심한 비밀 살만해진 진희가 말했다. 아프리카나 중남미에 사는 가난한 아이한테 후원해볼까 싶다고. 채원은 급작스레 튀어나온 대화 주제에 마시던 술잔을 내려 놓았다.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은 표정으로 진희를 응시했다. 생각지도 못한 채원의 반응에 멋쩍은 웃음을 지은 진희는 자신감을 잃은 투로 중얼댔다. "아니 뭐, 원래부터 생각은 있었어. 경제적 여유가 없었을 때야 뒤로 제쳐둔 것 뿐이고... 이제는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건데..." 채원은 그래, 네 마음이지 뭐, 왜 이렇게 눈치를 봐, 라고 말하곤 한동안 잔에 머물러 지루했을 술을 비웠다. 말은 퉁명스레 했지만 진희의 속마음을 들은 채원은 놀랐다. 번 돈은 모두 저축한다는 철칙과 지출은 적을수록 좋다는 신념을 만날 때마다 몸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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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과 이타심의 공생관계 (2)
/미세한 변화와 거대한 결과 급식비 미납 명단이 불리던 그날도 진희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조회 시간 말미에 잠깐 따라 나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제외하고는 평소의 풍경과 같았다. 더 이상 비참한 감정에 내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진희는 평소와 다른 선생님의 관심에 불안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으로 선생님을 따라 나설 뿐이었다. “김진희, 여기 근처 성민교회에 다니냐?” “아뇨” “그래? 뭐 어쨌든 거기 목사님이 너 급식비 내줬다. 앞으로 계속 내주신다니까 고맙게 생각하고 오늘부터 밥 먹어라. “ “네? 네.” 모르는 교회였고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굳이 힘을 들여 누군지 알고 싶지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감사함을 느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다.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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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키즈]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치열한 대결 속에서 외치다 - FUCK IDEOLOGY
/어두운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 중에서 신파 없는 슬픔을 느꼈던 영화를 오랜만에 만났다. 1951년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국내 최대 규모의 거제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 . 공산주의, 자유주의, 국가와 개인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레 연상시키는 이 배경설정은 흔히 주지적인 메시지로 마무리되곤 했다. 하지만 는 국적과 이념, 인종이 다른 등장 인물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춤'이라는 설정을 만나 진부하지 않게 다가온다. 수만 명의 조선인민군과 중공군 사이에서 말썽쟁이로 유명했던 주인공 로기수가 감금에서 풀려나 돌아온다. 경쾌한 그의 발걸음에 박자를 맞추는 포로들의 박수 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포로수용소 소장 사무실에서는 한창 댄스팀 창단을 논의 중이다. 자유 송환을 주장하는 반공포로와 자동 송환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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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달래는 통속적 시인 작가생활탐구 - 류근
상처를 달래는 통속적 시인 작가생활탐구 - 류근작품 이면에 숨은 작가들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생활탐구는 이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작가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작업실과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류근 시인은 쉽게 마음을 다친다. '술 한 잔 하자'는 그의 권유에 거절의 의사가 돌아오는 순간 그는 상처를 받는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18년 만에 출판한 그의 첫 시집 이름이 『상처적 체질』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상처적 체질』에 담긴 모든 시들이 그의 개인사에서 비롯한 것만을 보더라도 그는 상당히 민감하다. 시인으로서는 축복받은 감각이다. 그의 감각은 작업실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의 작업실은 타고난 감각이 총망라된 또 다른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그의 작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