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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춘 Non-Stop Talk About YG전속 백업댄서 김병곤
    Article/Interview 2017. 4. 7. 16:05

    꿈이 생겼다. 인생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사회가 줄기차게 강조하는 안정적 직장과 봉급이 부질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인생은 돈으로, 명예로, 지위로 이어갈 수 없었다. 그는 꿈이 없는 삶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제가 너무 식상한 말만 하죠. 하지만 식상한 말이 가장 정답인 것 같아요. 진리는 포장하지 않을 때 그대로 표현할 수 있거든요.”


    “청춘은 실패를 통해 만들어가는 거죠.”

     YG엔터테인먼트 전속댄스팀 하이텍 멤버 김병곤씨(안성캠 경제학과 3). “저 YG엔터테인먼트에서 백업댄서로 일해요”라고 말한다면 돌아오는 대답은 백발백중 “빅뱅이랑 친해? 2NE1은 예뻐?”다. 무대에 서는 일이 힘들지 않은지, 가수 그늘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 섭섭하지는 않은지, 이러한 류의 질문은 거의 돌아오지 않는다. 그야말로 ‘백업댄서’란 가수를 위한 존재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인식에 깊게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는 순순히 인정했다. 백업댄서는 가수를 위한 존재가 맞다고. 하지만 남을 위한 직업이라고 한들 자신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면 그는 백업댄서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 당당히 말한다. “춤추는 순간이 너무 즐거워요. 백업댄서라는 직업이 저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동네 춤꾼의 무대포 열정
     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동의 한 동네. 어느 한 무리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열여덟 살의 그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팝핀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댄서들은 자유자재로 팝핀 동작을 이어나갔다.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눈앞의 그들은 할 수 있었다. 멋있다는 말로는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댄서들은 평소에 그가 알던 형들이었다. 춤을 춘다는 사실 하나로 아는 형이 그의 우상이 됐다. 그 순간, 모든 것이 평범했던 그에게 평범하지 않은 것이 생겼다. 댄서가 되고 싶었다. 

     그는 무작정 형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면 형들이 춤추는 곳으로 달려갔다. 형들 틈새에서 몰래 춤을 배웠다. 슬쩍 그 형들 사이에 껴 거리에서 춤을 췄다. 어느 날, 해외여행을 갔던 한 형이 외국가수의 DVD영상을 공수해 왔다. 하지만 그 DVD는 성역이었다. 일명 ‘짬밥’이 있는 형들만의 소유물이었다. 인터넷을 쉽사리 사용할 수 없었던 시절, 그 DVD는 외국가수의 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DVD를 기계에 넣고 재생을 누르려던 순간, 형들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그날 그는 오지게 매질을 당했다. 

     하지만 그 사건은 형들이 그의 열정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열정에 감동 받은 형이 그에게 춤의 대가를 소개해줬다. 그는 그 대가를 찾아 학원으로 향했다. 대가의 제자가 되어 다양한 장르의 춤을 배웠다. 이제 막 실력을 쌓아 나가려던 순간, 부모님의 반대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부모님의 말씀에 어긋날 때마다 반대는 심해졌다. 그는 부모님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춤을 기준으로 찬성은 김병곤씨, 반대는 부모님으로 나뉘었다. 처음엔 두 입장 모두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합의점을 찾기 시작했다. 역시나 그가 학생이었기에 타협점은 성적이었다.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면 춤추는 것을 반대하지 않기로 했죠.”

     

    어느 댄서의 초보 탈출기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하자마자 그는 YG댄스팀 하이텍에 들어가고자 오디션에 참가했다. 긴장상태로 오디션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대기하고 있는 동안 경쟁자는 모이고 또 모였다. 오디션이 시작됐다. 하나 둘씩 시험을 치룬지도 한참, 마침내 그의 이름이 불렸다. 오디션은 준비해온 안무를 선보이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는 단순한 안무가 아닌 스토리를 가미한 안무를 선보였다. 그리고 며칠 뒤 전화 한통이 왔다. “YG엔터테인먼트 전속댄스팀 하이텍의 멤버가 되셨습니다.”

     8개월의 혹독한 훈련을 거친 뒤, 첫 방송 무대에 오르는 날이 왔다. 때는 2005년이었다. 원타임의 ‘니가 날 알어’라는 곡으로 5집 활동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아침 9시, 뮤직뱅크가 열릴 KBS에 도착했다. 수많은 가수와 수많은 댄서들. 그 속에 그가 있었다. 

     ‘니가 날 알어’라는 곡으로만 두 달을 연습했다. 방송 전날에도 새벽 5시까지 죽도록 연습했다. 이제는 멋있는 무대를 보여줄 차례였다. 하지만 카메라 리허설과 드라이 리허설을 하는 동안 그의 몸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춤을 추고 있는 것인지 가만히 서있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방송에서만 보던 가수가 그의 코앞을 서성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넋이 나간 채 생방송 무대에 올랐다. 아무런 기억도 없는데 어느새 무대에서 내려와 있었다. 그는 무대에 올랐던 4분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인들은 모두들 칭찬했다. ‘아, 내가 잘했나보구나.’ 그리고는 금세 웃었다. ‘재밌다.’

     이후, 그는 베테랑으로 거듭났다. 방송에서는 여유롭게, 콘서트에서는 즐겁게 춤췄다. 그리고 2010년, YG패밀리의 콘서트에 올랐다. YG의 유일한 전속 댄스팀인지라 모든 무대의 백댄스는 그들의 몫이었다. 서른 개의 무대에 연달아 올랐다. 오프닝은 빅뱅으로, 그 다음은 세븐, 다음 무대는 2NE1과 함께였다. 곡마다 다른 의상과 다른 안무였다.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던 새에 서른 번 연속 무대에 섰다. 안무를 틀릴까봐 안절부절못했던 초보일 적의 그는 없었다. 이제는 웃으며 무대를 즐긴다.

     

    위기탈출 넘버원 
     여느 남자들이 그렇듯 그에게도 군대에서 보낸 시간은 절망의 연속이었다. 춤을 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몸이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휴가를 나갈 때마다 온몸이 쓰라릴 때까지 춤을 췄지만 충분치 않았다. 매일 춤을 추는 이들에 비해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제대를 했다. 입대 전 실력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연습실로 향했다. 하지만 적응할 수 없었다. 연습실이 개조됐거나 멤버가 교체된 것도 아니었다. 더욱 큰 문제가 놓여 있었다. 그가 군대에서 춤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동안, 유행하는 춤의 흐름이 180도 바뀌어 버린 것이다. 

     몸도 감각도 마비된 듯한 상태에서 의욕까지 잃어버렸다. 열심히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슬럼프가 찾아왔다. 댄스팀에 남아있기 힘들었다. 춤까지 그만두고 싶었다. 슬럼프의 늪에 아주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오래 전, 처음으로 했던 실수가 떠올랐다. 시상식이었다. 원타임의 ‘핫뜨거’라는 곡으로 무대에 섰다. 안무를 틀린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망했다.’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안무팀 형들의 눈치만 살폈다. 호되게 혼났다. 그때는 첫 실수로 넘겼다. 

     이제껏 해왔던 실수들이 하나씩 오버랩 됐다. ‘내 실력이 그 정도구나.’ 그렇게 체념했을 때였다. 그의 고민을 눈치 챈 안무팀 형이 진심어린 한 마디를 던졌다. “무조건 열심히 해라.” 마침, G-Dragon 콘서트 일정이 잡혔다. 모든 고민을 뒤로하고 춤만 췄다. 

     “아마 춤이었기 때문에 더욱 부담이 컸던 것 같아요. 차라리 공부하라고 했다면 즐겁게 했겠죠? 공부하는 학생들이 춤을 취미로 출 때 부담이 없듯이 저 역시도 공부를 할 때 부담이 없거든요. 하지만 춤을 출 때는 미친 듯이 행복하면서도 어깨가 무겁죠.”

     

    늪에서 벗어난 청춘
      

     


     
     


      
     

    그는 오뚝이다.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고, 넘어지면 일어서기를 수백 번은 반복했다. 포기하지 않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그는 백업댄서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화려함 못지않게 무대 뒤의 상처가 많다고 했다. 즐겁게만 오른 자리가 아니었다. 

     그 역시도 사회의 인식이 두려웠다. 그래서 대학을 택했고 경제학과를 택했다. 그러나 그는 즐겁게 살길 바랐다. 그의 소망이 두려움을 뛰어넘었다. 그는 이제 두렵지 않다. “두려웠다면 처음 실패했을 때 진작 그만뒀겠죠.” 

     그는 슬럼프에 굴복하지 않았다. 즐거움을 택했다. 그래서 그는 인터뷰가 끝나고 즐겁고도 부담스러운 자리, 연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송은지 기자 ilnrv@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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