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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처를 달래는 통속적 시인 작가생활탐구 - 류근
    Article/Interview 2017. 4. 7. 16:10

    상처를 달래는 통속적 시인 작가생활탐구 - 류근

    작품 이면에 숨은 작가들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생활탐구는 이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작가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작업실과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류근 시인과의 인터뷰는 신사동에 위치한 그의 자택에서 이뤄졌다.류근 시인과의 인터뷰는 신사동에 위치한 그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류근 시인은 쉽게 마음을 다친다. '술 한 잔 하자'는 그의 권유에 거절의 의사가 돌아오는 순간 그는 상처를 받는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18년 만에 출판한 그의 첫 시집 이름이 상처적 체질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상처적 체질에 담긴 모든 시들이 그의 개인사에서 비롯한 것만을 보더라도 그는 상당히 민감하다. 시인으로서는 축복받은 감각이다. 그의 감각은 작업실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의 작업실은 타고난 감각이 총망라된 또 다른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그의 작업실은 신사동에 위치한 자택이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8차선 도로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한 동네지만 사뭇 도시에서 벗어난 듯 했다. 아마도 시인을 찾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자택도 그러했다.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의 창 앞에는 10년이 훌쩍 넘은 화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화분 앞에는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이 마련돼 있다. 햇빛과 화목이 어우러지는 배경이 환상적인지라 그 곳에 앉아있으면 저절로 시상이 떠오를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 책상에서 『상처적 체질의 초고가 탄생됐다. 그는 시를 쓰는 그 순간만큼은 익숙한 공간을 필요로 한다. 적응하지 못한 공간에서는 시를 쓰기가 어려워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북적이는 카페보다 조용히 시를 쓸 수 있는 작업실의 그 책상을 선호한다. 


    『상처적 체질』의 마지막 정리 작업은 강원도 화천의 감성마을에서 이뤄졌다. 평소 소설가 이외수와 돈독한 친분을 쌓아 놓은 덕택인지 그는 감성마을의 모월당에서 고 정리 작업을 마쳤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동안 그는 잠시 연애를 떠나 보냈다. 마지막 원고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연애를 접은 후, 혼자서 삼켜야 했던 외로움은 비로소 시집이라는 결과물로 세상에 공개됐다. 3개월의 정리 작업 후 출판된 『상처적 체질은 4쇄까지 발행됐다. 그의 인생과도 같은 사랑을 포기하며 견뎌내야만 했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준 것이다. 







    그의 시집이 독자의 열렬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통속 연애 시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칭 '삼류통속시인'이다 18년간 받아온 수많은 상처들이다보니 삼류이고 통속인 것. 그러나 그의 사랑이 삼류와 통속이 아닐 때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 미모의 선생님을 향한 그 마음만큼은 삼류가 아니었다. 비록 '삼류통속시인'의 길로 인도한 사랑이지만 말이다. 그는 당시 국어를 가르쳤던 선생님에게 첫 눈에 반했다. 그가 시를 열심히 쓰기 시작한 것은 선생님을 좋아하면서부터였다. "너 꼭 시인 되거라"라는 선생님의 말이 그를 시인의 길로 이끌었다. 선생님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에만 집중한 것이다. 그 때의 마음이 막연히 시인에 대한 감정으로 변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참으로 단순한 이유에서 시인의 길로 출발한 것이다. 



     

     
     

    그의 단순함은 책장에서도 드러난다. 책을 분류하는 방법이 상당히 단순하다. 보이는 곳에 꽂고 남는 공간에 꽂는다. 책을 분류하는 방법을 정해놓을 법도 한데 그에게는 분류법이 없다. 시리즈물 외에는 꽂혀 있는 책들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도 없다. 요즘 읽고 있는 책도 마찬가지다. 인문학 서적을 읽은 후 시집을 읽고, 심리책을 읽은 후 소설을 읽는다. 도저히 '요즘 관심사가 뭐예요?'라고 물어볼 수 없는 독특한 취향이다. 


    그러나 그는 상당히 복잡했다. 그에겐 굴곡이 심했던 인생사가 있었고 그 안에는 시인으로서의 심오한 고민이 있었다. 그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재학생 시절 문화일보 제1회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그러나 시집을 내기까지 1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대기업 직원, 농사꾼, 마지막으로는 사업가까지. 참 복잡했다. 시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가득차 있던 순간 문학계로부터 외면 당했다. 그리고는 대기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인간의 인생사가 허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농촌으로 들어갔다. 유유자적 한량의 삶을 살다 겨울을 나기조차 어려운 상황임을 알아 차렸을 때,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로 돌아와 그는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그는 넘치는 업무에 시달렸다. 그의 인생에서 시와 가장 멀어진 순간이었다. 그는 사업하던 시절, 일년에 네 편의 시를 썼다. 유일한 구원의 길이던 시와 멀어진 그때에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폐쇄공포가 그를 엄습했다. 절필 후유증이었다. 다시 시인으로 돌아 가기로 했다. 천생 시인이었던 것이다. 


    시와 함께 그를 평생 따라다니는 것이 있다. 바로 술이다. 그는 술꾼이다. 어렸을 때부터 단련된 실력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곁에는 항상 술이 있었다. 그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사람이다. 한국 사회에서 술이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에겐 술이 있다면 쉽사리 자리가 파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의 시 '극지'에서 그의 마음이 잘 표현돼 있다. '사람을 만나면 술을 마셨다 / 술자리가 끝나지 전까지는 / 떠나지 않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 두 번째 시집을 내려 한다. 술을 마시며, 사람과 만나며, 그 만남 속에서 연애를 하고, 다시 상처를 받고. 그리고 나면 우리는 또 다시 삼류 통속 시인의 통속적인 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산에 가면 산을 쓰고, 물에 가면 물을 쓰고, 개를 만나면 개를 쓰고, 여자를 만나면 여자를 쓴다'는 명언을 남긴 그는 아마 오늘도 어김없이 상처를 받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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