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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늠할 수 없는: 술 한 잔에 개워내지지 않는 인생의 하중
    Essay/Essay 2018. 9. 24. 18:30

    술에 취해 지그재그로 걷는 와중에도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의 형체가 또렷이 들어왔다. 아버지였다. 가슴 안쪽에서 심장이 크게 낙하하는 느낌이 들면서 잃어가던 정신이 순식간 돌아왔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똑바로 걸어야만 했다. 온몸을 감싼 알코올 향도 사그라들어야만 했다.



    다리를 이용해 휙휙 걸어오는 그의 속도는 빨랐다. 어떤 조치를 취할 겨를이 없었다. 금세  앞에 도달한 아버지는 당신 앞에서 냄새를 풀풀 풍기는 나를 살며시 안았다. 걱정이 내포된 손길과는 다르게 표정은 붉으락푸르락했다. 어느 누구에서도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나는 얼굴에서 눈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했구나. 미약하게나마 깨달으려던 때였다.


    "유채원, 마셨나?"


    난생처음 보는 얼굴에 기가 죽어가던 차였는데. 한마디가 방어기제를 싹트게 했다.


    "아부즤. 여ㄴ락도 안 하고 서울에 유ㅔ 왔노."

    '...'


    2012 어느 겨울의 밤. 아마도 12시를 훌쩍 넘겼을 시각에 서울의 주택가에서 깊은 한숨을 쉬고 있는 아버지는 사실 경상도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지내고 있었다. 


    시험 기간이었다. 학기에 맞은 학사 경고의 내상을 치유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사실 내상이라기엔 나의 나태가 빚어낸 결과였으니 할말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게 있다면 부지런한 인생을 살아야 할 이유를 전혀 찾지 못했던 내게 근면해야 할 의지를 200% 안겨줬달까. 너무 낮은 학점이 취업의 발목은 잡지 않을까 싶어 성적 복구에 온힘을 쏟아내고 있을 때였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나갔고 아버지와 이틀 넘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꾹꾹 누른 아버지가 딸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서울 집에 올라왔을 나는 말이다. 고단했던 시험을 마무리하고 친구들과 한잔 걸친 집에 돌아오고 있었다. 불안에 이루던 아버지는 그날 그런 딸을 마주하고 말았다그날의 눈에 담긴 아버지의 표정이 선명히도 기억에 남아 마음 한구석 아래에 내려앉았다. 






    다음날 아침.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아버지가 끓인 콩나물국에 고개를 푹 파묻고 있었다. 목 넘김이 순하지도 않은 소주를 마셔서 그런지 속은 출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출렁거림의 강도만큼이나 강렬한 숟가락질을 할 수 없었다. 양심상 아버지가 만들어준 밥을 먹는 게 민망하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술을 마시는 걸 죽을 만큼 싫어하는 아버지 앞에서 숙취가 심한 꼴을 들킬 수가 없었다. 내 마음 속의 동요를 모두 안다는 듯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아버지는 마침내 입을 뗐다. 


    "이따가 학교 몇 시에 끝나노? 아버지랑 콜라 한 잔 할래?" 

    "집에 안내려가나. 시간 많나?"


    라며 퉁명스레 하지만 풀이 죽은 대답하는 내게 정도 시간은 있다며 아버지는 웃었다. 




    그날 우린 옛날 통닭집에서 치킨 한 마리와 콜라 두 잔을 앞에 두고 회우했다. 아버지는 당신의 철없던 시절에 대해 얘기했다. 


    그가 스무살 때의 일이다. 아버지와 그의 친구들은 술집에 가기엔 주머니가 텅 빈 대학교 1학년생들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해 대학 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술집이란 넘어갈 수 없는 벽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대안은 있었다. '노상까기'. 한 마디로 길 바닥에 앉아 술상을 벌이는 거다. 그들은 없는 돈을 털어 소주 병을 사들고 초등학교에서 안주도 없이 노상을 까는 생활을 꽤나 했다고 한다. 


    그날도 평범스런 날 중에 하나였다. 과자 안주가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안주가 껴서 그랬나보다. 그날따라 소주가 부드러웠다던 아버지와 친구들은 어느새 취했다. 평소에 불문율로 여겨졌던 큰 소리 내기를 어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평소보다 빨리 돌았던 취기 때문이었으리라. 





    초등학교, 그러니까 남의 사유지에 맘대로 입장하고, 자리를 깔고, 시간을 보냈던 이들에게 가장 민감했던 건 '소리'였다. 큰 소리는 절대 안된다는게 어겨서는 안될 철칙이었다. 평소엔 잘 지켜졌다. 꽤 긴 시간을 초등학교에서 노상을 깔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그날은 철칙이고 뭐고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소리를 높여 호탕하게 웃고 마시고. 서로를 놀려대다 또 호탕하게 웃고. 그러다보니 경비 아저씨의 헤드라이트에서 퍼진 빛이 그들을 비추더니 연이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혼비백산한 아버지와 친구들은 동서남북 각지로 흩어졌는데 아버지와 김씨였던 한 친구가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곧이어 막다른 길목을 마주했다. 


    아버지는 무사히 벽을 기어올라 반대편 평지로 착지했지만 문제는 김씨였던 그 친구였다. 무리 중에서 유달리 체구가 작았던 김씨 친구는 벽을 오르는 것부터 버거워했다. 반대편 벽을 다시 기어올라 아버지는 김씨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친구는 아버지의 손을 동아줄 삼아 힘겹게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는데 그새 경비 아저씨가 그들을 쫓았다. 그 둘이 밍기적대던 시간이 그만큼 길었나보다. 


    "야이 새끼들아!!!!!!" 


    라며 뛰어오는 경비 아저씨를 본 아버지는 까무라쳤다. 체구가 작은 친구였기에 아버지는 김씨 친구를 힘껏 당겨 위로 올렸다. 김씨 친구의 손을 놓고 아버지는 가볍게 착지했다. 하지만 김씨 친구는 아니었다. 허공에서 두 다리를 허우적대던 김씨 친구는 반대편으로 넘어오는 건 성공했지만 완벽한 착지에 실패하고 말았다. 발목이 꺾인 거다. 아버지는 김씨 친구를 들쳐업고 이새끼 저새끼 온갖 욕을 쏟아내는 경비 아저씨의 목소리가 희미해질 때까지 뛰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그날을 생생히도 기억하고 있었다. 


    한껏 이야기를 늘어놓던 아버지는 나의 어제가 젊은 날을 대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습성이라 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에 재미를 찾아 나서는 건강하다며 100% 아니, 1000% 이해한다는 오버스런 말도 덧붙였다. 오버스런 말 뒤에는 약간은 진지한 말들이 이어졌는데 골자는 그러했다. 낙으로 마시던 술이 고될 때 찾는 마약이 될 수도 있다고. 사유지 침범으로 큰 일을 겪을 뻔한 아버지도 마약으로 변모한 술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조금은 골치를 썩었어야 했다고. 느릿느릿 이야기를 이어가는 아버지는 아마 콜라에 취한 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잠시 잠깐의 재미에 인생의 무게를 모두 걸면 안 된다. 결국 재미도 고됨을 개워내려고 더 찾게 되거든. 그러다 인생의 하중이란게 재미 만으로 상쇄되기엔 얼마나 무거운건지 깨닫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채원아."

    "무슨 말이고 아버지. 안 마시면 된다이가. 그만해라 이제." 





    인생살이 만만치 않다며 친구와 술잔을 맞대다 혼자 사는 집으로 걸어가던 길. 약 기운이 조금은 덜 들어 소주 한 병을 사들고 너털거리며 걷던 길에 갑자기 이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술 한 잔에 개워내지지 않는 인생의 하중이 뭔지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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