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기심과 이타심의 공생관계 (2)
    Essay/Essay 2018. 11. 18. 17:09

    /미세한 변화와

    거대한 결과

    급식비 미납 명단이 불리던 그날도 진희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조회 시간 말미에 잠깐 따라 나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제외하고는 평소의 풍경과 같았다. 더 이상 비참한 감정에 내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진희는 평소와 다른 선생님의 관심에 불안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으로 선생님을 따라 나설 뿐이었다.


    “김진희, 여기 근처 성민교회에 다니냐?”

    “아뇨”

    “그래? 뭐 어쨌든 거기 목사님이 너 급식비 내줬다. 앞으로 계속 내주신다니까 고맙게 생각하고 오늘부터 밥 먹어라. “

    “네? 네.”


    모르는 교회였고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굳이 힘을 들여 누군지 알고 싶지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감사함을 느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다. 교무실에서 교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그저 자신에게 보여주는 사소한 관심이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을 뿐이다.



    진희는 다시 밥을 먹었고 열심히 공부했다.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졌던 3년의 고등학생 시절을 겪어내고 서울 중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가끔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2,500원을 내밀 때, 그 교회의 그 목사가 떠올랐다. 등록금을 마련하려 휴학하고 다시 복학을 반복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아르바이트 시간을 제외하곤 스펙 쌓기에 몰두했다. 그렇게도 문턱이 높다는 S사에 단번에 취업했다. 한달에 350만원. 너무나 큰 돈이 통장에 들어왔지만 가난으로 인한 내면적인 상처가 깊어지는 만큼 돈에 대한 공포를 키워가던 그였다. 빚만 갚았다. 본인을 위해 쓰지는 않았다.






    /이기심일까

    이타심일까

    일주일 쯤 지났을까. 진희가 찾아왔다. 채원의 술잔을 채워주면서 진희는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야, 너 프렌즈 아냐?"

    "알지"

    "내가 요즘 주말마다 보고 있거든. 거기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이기적이지 않은 이타적 행동은 없대.”

    “왜?”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뿌듯함도 들고…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결국 그런 기분을 느끼려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거지"

    “그럴 수 있겠네"

    “내가 아프리카의 가난한 아이를 후원한다는 마음도 이기심의 발현일까? 100% 선의일 순 없을까? 그런데 100% 선의로 누군가를 도우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술을 연거푸 들이키던 진희는 혀가 꼬일대로 꼬인 채로 말을 이어갔다. 그 말을 번역해보면 이렇다.


    “나도 말이야. 어릴 땐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찬줄 몰랐지. 내 주변엔 없었거든. 근데 이제 그 이유를 알았다? ‘사람의 아름다움’에 사실 법칙이 있더라고. 기브앤테이크. 아름다운 사람들은 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야. 나도 누군가한테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을만 해지니까 다시 돌아오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거든.

    나랑 같은 환경에 있는 애들 말이야. 기브를 못하잖아. 그래서… 그 애들이 아름다운 사람을 보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그 어린 시기에 얼마나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보고 있을까? 세상이 그렇게 각박하지 않다는 걸 알려주려면 대가 없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중간에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 많이했네"

    “근데 내가 돌려주지 않아도 나한테 줬던 사람이 있긴 했어. 처음엔 그 도움이 너무 아니꼬왔는데… 먹고 살만해지니까 고맙더라. 조금은 진심으로 고맙다는 느낌이 드니까 나도 누군가한테 돌려받을 생각 없이 뭔가를 줄까 싶었어.”

    “주면 되잖아. 뭐가 걸려?”

    “그냥… 후원이란게 당연히 이타적인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관점을 접해서 그런지 생각이 많아졌을 뿐이야.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 싶은거지.”

    “이기적인 마음으로 이타적인 일을 시작해서 이타적인 결과를 낳으면 모두가 좋지 않냐?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건가.”

    “아니, 깔끔하네.”




    /이기심과 이타심의

    공생관계

    완연한 봄이 무더운 여름으로 이어졌고, 이제 쌀쌀한 가을을 데려왔다. 직통으로 정수리 끝을 향했던 직사광선은 어느새 사늘한 바람으로 변했다.



    지금과 같았던 날씨. 그날 이후로 부쩍 바빠진 진희를 못본 지 일년 쯤 되었나. 카페에 앉아 진희가 말했던 프렌즈의 그 장면을 보다 윙윙대는 알람에 몸을 부르르 떠는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페이스북의 새 게시물 알람, 진희였다.




    어림잡아 아프리카로 보이는 곳에서 6~7살 남짓으로 보이는 어느 남자아이와 함께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보니 아마 후원하는 아이를 방문한 게 아닌가 싶다.


    “산티아고와의 첫 만남.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이기적인 그녀가 밝게 웃는다.

    이타적인 그녀가 선사한 웃음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