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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춘 Non-Stop Talk About 음악인 김중구씨
    Article/Interview 2017. 4. 7. 15:53

    20대는 바쁘다. 이력서를 채우기에 대학생활은 너무 짧다. 스펙을 쌓느라 휴학은 필수가 되어 버렸고 취업이 되지 않아 5학년이 생겨났다. 이제 스펙은 기본이고 남과 다른 경험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자기소개서에 쓸 에피소드가 없어 인턴까지 한다. 이렇게 우리는 스펙에 맞춰 꿈을 정한다. 김중구씨는 단순하다. 뭘 그렇게 바삐 하시냐고 묻는다. 꿈부터 가지라고 전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활동들이 자연히 스펙이고 경험이라고 말한다. 우리도 그처럼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꿈이 있다면 스펙, 그냥 따라온다.


    “지루함은 젊음에 대한 죄라고 생각해요”

     

      
     
      
     

    대학가요제 인터뷰 이후 넉 달 만에 김중구씨(한국화학과 2)를 다시 만났다. 대충 걸친 점퍼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그는 사람을 만난 지 오래됐다고 했다. 작업실로 가는 도중, 기분이 이상하다며 자꾸만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책에서만 보던 사람 같았다. 작업실에 찌들어서 외롭게 작업하는 예술가. 그는 사실이라고 했다. 일기를 쓰라 한다면 작업실에서 작업한 얘기밖에 없다고 쑥스러워 했다. 일렉트로닉에 심취해 일렉트로닉을 동반자로 삼은 김중구씨. 그의 삶은 작업실에서 채워지고 있었다.

     

     

    대학가요제의 역사가 된 늦깎이 음악인  
      ‘이미 넌 맘이 없어, 이미 넌 맘이 없어~’ 그가 작곡한 ‘이미 넌 맘이 없어’라는 곡이 자꾸만 귓가에서 울린다. 대학가요제 영향이다. 2010 MBC 대학가요제에서 본선까지 진출한 김중구씨. 대학가요제 역사상 처음으로 일렉트로닉 장르의 곡을 들고 나왔다. 밴드에 퍼포먼스까지 가미한 그의 무대는 신선했다. 그의 모습은 3위 안에 들기엔 약간 무리였을지언정 사람들의 기억 속엔 확실히 각인됐다. 어느새 매니아층이 형성돼 있었고, 대학가요제 관계자들은 이미 그에게 눈독을 들였다. 
     

      그는 미대생이었다. 여느 미대생과 같이 과제에 허덕이며 한 학기를 보냈다. 하지만 음악은 항상 그와 함께였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심지어 그림을 그릴 때도 그의 귀엔 항상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그림보다 노래가 좋았다. 이대로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음악으로 뭔가를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덜컥 휴학을 해버렸다. 부모님의 반대는 엄청났다. 용돈이 끊겼다. 예전에 누리던 문화생활, 쇼핑, 모두 사라졌다. 밥이나 먹으면 다행이었다. 


      그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작곡에 필요한 장비, 작업실 모두 그의 힘으로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홍대에서 DJ 활동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바로 그 기회를 잡았다. 음악과 함께한 생활이라 행복하기만 했다. 돈이 아닌 ‘아 오늘 선곡 좋네요’라는 칭찬 한 마디로 그는 내일을 살았다. 클럽에 나오는 노래를 내 손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6개월 후, 드디어 그는 자신의 힘으로 작업실과 장비들을 마련했다.

     


    서태지보다 멋진 사람이 될 거예요

     김중구씨의 작업실에 들어갔다. 2평 남짓한 아늑한 작업실이었다. 그의 작업실 한쪽 벽면에는 서태지가 있었다. 포스터는 큼지막했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서 서태지는 우상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서태지 노래를 처음 들었던 단 4분이 그의 인생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병적으로 노래를 많이 들었다. 노래 박사였다. 모르는 노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찌 된 이유에선지 그는 유독 서태지의 노래는 듣지 않았다. “돈 떨어지면 한국 가겠습니다.” 서태지에 대한 루머가 한창 떠돌고 있을 때에도 서태지는 그의 관심 밖이었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어느 날, 같은 반 여자아이가 물었다. ‘너는 왜 서태지처럼 대단한 사람의 음악을 듣지 않느냐’고. ‘그래,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들어나 보자.’ 그는 서태지의 'Live Wire'라는 곡을 들었다. 팬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서태지를 싫어했던 소년의 작업실 벽면엔 서태지의 포스터가 붙여져 있다. 


      그도 독한 걸로 치면 서태지 못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좋은 곡을 만들어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밴드동아리에 들었다. 하지만 노래를 시켜주지 않았다. 드럼 칠 사람이 없다며 드럼이나 치라고 했다. 1년 동안 노래실력 한 번 발휘하지 못하고 드럼 스틱만 만졌다. 그러다 어느 공연 날, 그는 드디어 폭발했다. 공연 도중 멤버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마이크를 들고 무대 중앙으로 나갔다. 무반주로 에픽하이의 ‘평화의 날’을 부르기 시작했다. “제가 하나도 안 떠는 거예요. 생각했죠. 내가 음악가 스타일이라고.”



    모두가 기다리는 그의 신선함 
      “신사동호랑이가 악기를 줬어요!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하더라고요.” 대학가요제에서 그는 신사동호랑이의 관심을 샀다. 신사동호랑이는 넘쳐나는 일렉트로닉 노래 중 그의 곡은 신선하다고 했다. 일렉트로닉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대중들도 그를 주목했다. 그의 미니홈피에는 팬들의 응원이 끊일 줄 모른다. ‘다른 노래도 듣고 싶어요’, ‘앨범 내시면 안돼요?.’


      그래서 그는 팔을 걷어붙였다. 앨범 작업에 돌입했다. ‘좋은 노래 만들겠다’는 의지로 그는 난생 처음, 아침 7시에 일어났다. 7시에 일어나 해장국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작업실로 돌아온다. 곡 작업에 앞서서 그는 명상의 시간을 가진다. 그가 쉬는 시간은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9시부터 2시까지 작업은 계속된다. 그는 새롭게 신조를 정했다. ‘악상이 떠오를 때까지 키보드 앞에서 떠나지 말라’. 그는 신조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일렉트로닉. 무수한 일렉트로닉 곡이 발표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뻔한 기법에 뻔한 코드? 싫어요.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하죠. 하지만 일렉트로닉으로 시작해서 일렉트로닉으로 끝나는 곡은 만들지 않을 거예요.” 일렉트로닉의 무한한 음역대와 어쿠스틱의 감성을 섞은 노래, 어쿠스틱을 기반으로 일렉트로닉을 가미한 노래 등 그는 앨범에 지루함을 허락하지 못한다고 했다. 앨범 발매 예정인 5월, 드디어 코앞에 다가왔다.

     


    쓰레기가 작품으로 탄생되는 순간
      “자고 일어나서 어젯밤 만들었던 곡을 들어보면 그렇게 쓰레기일 수가 없어요.” 자신이 만든 곡이 쓰레기로 느껴질 때, 그는 가장 힘들다. 음악을 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라고도 했다. 그는 매번 마음을 다잡는다. ‘열심히 안하니까 불안하다. 열심히 해라.’ 
     

      그는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한 순간의 기쁨이지만 이를 위해 몇 년을 투자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것이 똑같다고 말했다. 환희를 느끼려면 지옥을 경험해야 한다고. 그는 불안으로 꿈을 실현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20대에게 전했다. “진리는 단순해요. 열심히 하세요. 내가 죽을 것 같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불안해 할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글 송은지 기자 ilnrv@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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