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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등급짜리 밥
    Social Issue/social critique 2017. 4. 7. 15:33

    1등급짜리 밥 

    그는 연신 관제씨의 입주위를 휴지로 닦았다. 관제씨의 침이 흐를 새도, 마를 틈도 없었다. 됐냐는 그의 물음에 관제씨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미소와 함께 관제씨의 눈주름이 깊게 패자 그의 입꼬리도 따라 올라갔다. 그는 이어 관제씨의 전동휠체어에 걸린 가방을 살폈다. 고개를 들어 관제씨에게 물었다. 탄산음료 마실래, 아니면 알로에 주스? 관제씨는 탄산음료를 택했다. 그는 다시 가방을 열었다. 종이컵과 음료를 꺼냈다. 그리곤 조심스레 음료를 먹였다. 다시 입주위를 닦았다. 



    이병기씨는 활동보조인이다. 관제씨는 이용자다. 이 둘 사이에 정부가 놓인다. 먼저 관제씨가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정부에 신청하면 정부로부터 시급을 받는 활동보조인이 배정된다. 정부를 제외하면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고용주가 된다. 보통의 상식에 역전된 권력관계가 생긴다. 이 권력관계에 따라 일상이 정해진다. 관제씨가 가야만 하는 곳, 가보고 싶은 곳에 병기씨는 항상 동행한다. 행선지 뿐만 아니라 식사메뉴도 그렇다. 일주일의 나흘을 관제씨와 함께 보내는 병기씨의 식사메뉴는 관제씨의 취향에 맞춰진다. 관제씨는 김치를 좋아한다. 그들이 함께 사는 혜화동 집 냉장고가 온통 김치로 가득찬 이유다. 

     

    그날도 관제씨가 좋아하는 김치를 사러 나섰다. 광장시장의 그 단골집으로 향했다. 병기씨는 관제씨 옆에 서서 이쑤시개를 집어 들었다. 관제씨의 시식을 돕기 위해서다. 백김치 먼저, 그리고 파김치를 집어 관제씨에게 줬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열무김치를 집어 들었다. 열무김치가 입에 들어가자 관제씨의 손이 움직였다.  관제씨가 웃었다. 아줌마, 이거 이거요. 병기씨는 열무김치를 구입했다. 다른 종류의 김치를 더 산 후에 그들은 발길을 돌렸다. 혜화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들은 돼지갈비집 앞에 멈춰섰다. 


    병기씨는 의자를 정리해 관제씨의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곤 돼지갈비를 주문했다. 병기씨는 관제씨 앞 테이블을 깨끗하게 닦았다. 수저를 놓고 앞접시를 챙겼다. 바쁜 병기씨의 등에 관제씨의 손이 닿았다. 뒤를 돌아 관제씨의 표정을 살피던 병기씨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김치찌개와 소주를 추가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자 병기씨의 손이 바빠졌다. 고기를 구웠고 상추쌈을 쌌고 땡초를 먹여줬다. 그리고 소주로 마무리했다. 식사 중간마다 관제씨의 더듬거리는 손길이 향하는 것을 찾아 그의 입에 넣어줬다. 김치찌개가 나오자 관제씨가 환호했다. 그 모습을 본 병기씨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관제씨가 좋아하는거 꼭 시켜야돼. 한쪽으로 쏠린 밥의 역학관계. 그러나 그들이 밥에 관해 의견을 일치할 때가 있다.  



      


    그들의 밥은 등급으로부터 나온다. 등급은 시간이자 곧 돈이다. 장애등급제 때문이다.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를 국가에 등록하고 국가는 그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그들 중 1급과 2급 판정을 받은 이들만이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등급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등급에 따라 활동보조서비스의 시간이 할당된다. 1등급 장애인을 맡으면 일주일에 107시간, 2등급 장애인의 활동보조인의 경우 86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관제씨의 장애가 등급이자 시간이자 병기씨의 월급이다. 병기씨는 그나마 자신의 사정은 낫다고 했다. 관제씨가 초중증장애인 판정을 받아서다. 관제씨는 1등급 장애인이다. 1등급. 사람 앞에 등급이 붙었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관제씨와 병기씨는 재심사가 걱정이다. 재심사를 받으면 100에 99명은 등급이 낮아진다고 했다. 등급이 낮아진다는 것은 병기씨에겐 월급이, 관제씨에겐 밥을 떠먹여 줄 누군가가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등급에 따라 그들의 생활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등급의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 

     

     1등급짜리 밥. 1등급이지만 언제든 1등급이 아닐 수 있는 밥을 관제씨와 병기씨는 모두 헤치웠다. 고기는 한 점 남지 않았고 김치찌개는 바닥을 드러냈다. 관제씨가 유독 좋아했던 땡초 그릇도 소주도 텅 비었다. 텅 빈 그릇엔 장애등급제에 대한 분노와 재심사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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