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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타 3개월 살기/Day 2] 오랜 친구, 새로운 친구
    Travel/Malta 2023. 5. 16. 21:54

    01.
    아쉬움 한아름 안고서


     

    절친과 함께 오지 못했다. 아, 그렇다고 그녀가 영영 오지 않는 건 아니다. 한 달 안에 우린 다시 몰타에서 만나겠지. 어쨌든 몰타에서의 생활을 처음부터 함께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한날 한시에 몰타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 건 너무도 아쉽다. 만약 그녀와 첫날부터 함께였다면 두려움이 제거된, 순수한 설렘만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경유지에서 혹시나 탑승구를 놓치더라도, 숙소에 도착한 첫 날 혹여 문이 열리지 않더라도, 초행길에서 길을 잃는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모든 모험을 함께 헤쳐갈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위안일 거다. 이 머나멀고도 낯선 땅에서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안전감이 기저에 있었을테니 말이다.

     

    함께’라는 단어는 ’’을 ‘설렘’으로 바꿀 수 있는 어마어마한 무기다. 

     

     

     

     

    02.
    언어의 힘   


    아마 그녀와 함께였다면 순간의 떨림, 긴장, 걱정, 신기함, 흥미로움 등등의 감정을 조잘대고 있었을거다. 언어 장벽이 0에 수렴할 때, 대화 장벽 역시 0에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한인 마트에서 발견한 신라면과 김치가 얼마나 반가운지 쉴새 없이 떠들었을 테고, 좌석이 2개 밖에 없는 자동차를 1분에 한번씩 마주칠 때마다 느낀 신기한 감정 역시 조잘댔을 거다.

     

    노란색 건물이 빽빽한 주택가를 거닐 때마다 ‘몰타 건물은 왜 죄다 노란색이야?’라거나 공사 중인 건물이 즐비한 시가지를 보면서도 ‘몰타는 왜 이렇게 공사 중인 건물이 많아?’라고 물음을 던지곤 했겠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건 순간의 감정과 느낌을 조금의 과함도, 조금의 덜함도 없이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03.
    Trade-off


    반대급부는 항상 존재한다. 오랜 친구를 잠시 잃은 대신 새로운 친구들을 얻었다. 

     

    때는 5월 2일 아침 8시. 장소는 ESE 지하의 레벨 테스트 현장. 사실 나는 한국에서 이미 레벨 테스트를 치렀다. 그 말인 즉슨, 나는 지하의 레벨 테스트 현장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잠시 눈알을 굴리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근처로 다가오자 손을 들어 말했다.

     

    ‘저는 이미 레벨 테스트를 했는데요? 저는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요!’
    '언제 했는데요?’
    ‘아마 저번주 목요일 아니면 금요일이요!’ 

     

     

    그녀은 내 레벨 테스트 시험지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더니, 잠시 무엇을 알아본 후 이렇게 대답했다. 

    ‘우린 레벨 테스트 결과를 받아보지 못했어요, 그러니 한번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테스트를 또 치러야 한다니. 조금의 짜증이 일렁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짜증을 조금 억누르며 주위를 둘러봤고 이내 옆자리에 앉은 일본인, 그 옆자리에 앉은 터키인, 그리고 터키인의 옆자리에 앉은 독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레벨 테스트 후, 우린 제각기 다른 반으로 흩어졌지만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교환한 덕에 다시 만났다. 

     

     

     

     

    04.
    심장박동, 220 


    우린 그날 저녁 시간을 함께 보냈다. 국적은 제각각이었다. 독일, 러시아,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 (터키인은 사라졌고, 대신 러시아인 친구가 합류했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인데다 외국인이라니! 그 당시에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아마 내 긴장은 극한에 다다랐을 거다.

     

     

     

     

    지금 내가 아무렇게나 던지는 영어를 그들이 알아 듣긴 할런지, 내가 그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긴 한건지, 그래서 내가 적절한 대답을 하고 있긴 한건지.

     

    내가 내뱉는 말이 내 생각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거나 혹은 친구들의 말을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을 또, 그리고 또! 직면할 때, 그 다음 말을 꺼내기 전 겁부터 먹곤 했다. 분명 저녁을 먹기 전에는 당장이라도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지만, 대화를 시작한 순간부터 배고픔은 사라지고 긴장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05.
    '처음'과 '긴장'의 
    상관관계


    하지만 긴장은 대부분 ‘처음’이란 단어와 함께한다. 내게 익숙지 않아서, 내가 경험해보지 않아서, 즉 처음이라서. 그리고 처음은 새로움이나 신선함을 동반한다. 

     

    나는 독일과 러시아엔 속눈썹 연장술이란 게 없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럴만도...) 러시아가 발발시킨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여파인지 독일에 러시아인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유럽의 20대 후반 혹은 30대에 접어든 이들에게 BTS는 그다지 인기가 있진 않다는 것도 새롭게 접했다. 지금 일본에서는 다채로운 색감의 속눈썹 연장술이 유행이라는 것까지도.

     

    순간의 내 감정을 마땅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신기한 내용의 대화에 대한 신선함으로 금새 대체됐다. 오래된 친구와 전혀 나누지 않을 법한 대화를 영어라는 언어로, 혹은 온갖 몸짓 발짓으로, 그리고 때론 구글의 도움도 얻어 가면서 나눴다. So crazy, So interesting과 같은 짧지만 아무렇게나 내뱉을 수 있는 단어를 대화의 80% 이상에 사용하고 있는데도 말이 통한다는 게 조금은 신기하기도.  

     

    오랜 친구, 그리고 새로운 친구. 잃는 게 있다면 얻는 것도 항상 있다. 내가 잃은 것에 미련을 남기지 말아야지, 앞으로 내가 얻을 것에 집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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