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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초 등대 해수욕장, 잘 놀다 갑니다!
    Travel/Domestic 2023. 12. 17. 10:26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무리가 내 앞에 파라솔을 편다. 

     

     

     

    무리 중 한 분의 겨드랑이에 꼿꼿이 고정되어 있던 돗자리는 마침내 자유를 얻어 모레 위로 놓인다. 거친 손길로 빳빳하고 팽팽하게 돗자리를 정리한 아주머니들은 일제히 신발을 벗어 네 곳의 모서리에 모셔둔다. 어제 오늘 합을 맞춘 게 아니라는 듯 완벽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걸 보니, 바다 나들이가 일상인 주민이 분명하다. 

     

     

    촘촘한 관광객 무리 속에서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아주머니 무리는 이내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해변에 울려퍼지는 쾌활한 댄스 음악과 곳곳에서 들려오는 재잘거림, 파도가 만들어내는 철썩거림의 합주로 인해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재밌게 하는지 알 수는 없다. 표정으로 비추어보건대 무언가 재밌는 이야기에 빠져 계시단 걸 짐작할 뿐이다. 

     

     

     

     

    수다 파티는 짧았지만, 굵게 마무리되었다. 무리 중 몇몇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물 속으로 향한다. 돗자리에 남으신 분들은 바다로 시선을 보낸다. 그것이 반짝이는 윤슬을 향한 것인지 아득한 수평선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다 모레를 침대 삼고, 모자를 베개 삼아 잠의 세계로 들어간다. 

     

     

    또 잊어버렸다. 내게 여행지인 곳들은 모두 누군가의 날들이 반복되는 곳이라는 것을. 바다에 면해 있는 보금자리에서 하루하루 생업에 힘쓰는 이들에게는 관광객들의 행위 하나하나가 점철되어 일상이 된다는 것을. 스쳐가는 사람은 머무는 사람이 만든 무언가를 온전히 빌려 쓰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내 행동이 단절된 점이 아닌 연결된 선이라는 걸 다시금 상기할 즈음 네 명의 아주머니가 이런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내 동네에서 방종스레 굴지 말되 즐겁게 놀다 돌아가거라.’

     

     

     

     

     

     

    상념에서 깼다. 무거운 바람, 가벼운 바람이 살갗을 반복하며 스쳐지나가다보니 어느새 해변이 닫는 시간이다. 가장 먼저 비치타올 위에 규칙 없이 흐트러진 책, 물안경, 에어팟을 가방에 넣고 아쿠아슈즈에 묻은 모레를 털어낸다. 쓰레기를 모아 놓은 종이가방을 샅샅히 훑어보다 배가 불러 남겼던 후토마키 한 조각을 발견한다. 쓰레기통이 아닌 뱃속으로 흘려 보낸다. 살짝 찰랑일 정도로 남은 맥주 역시도 배로 흘려 보낸다. 

     

    ‘잘 놀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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