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청춘 Non-Stop Talk About 여행에 자신을 맡긴 이민재
    Article/Interview 2017. 4. 7. 15:59

    오늘날, 20대에게 ‘안정성’은 최고의 미덕이 됐다. 안정적 직업과 안정적 노후를 위해 우리는 청춘을 제쳐둔다. 직업을 위해 20대를 투자하고 노후를 위해 평생을 투자한다. 삶의 여유를 즐기고자 떠난 여행도 이제는 ‘경험’이라는 스펙으로 작용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이나마 ‘도전’이라는 단어를 기억하고 있다. 외국어 공부와 계획하지 않은 여행으로 청춘을 기억하는 이민재씨. 여행을 통해 도전을 현실화하는 이민재씨를 만나봤다


    “사기당한 일도 유쾌한 경험이었죠”

     
     

     보통의 여행 준비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한다. 그 후, 인터넷에 방대하게 쏟아져 나온 정보를 수집한다. 유명하다는 곳은 모조리 모아 수첩에 적는다. 셋째, 거리와 시간을 고려해 방문 장소의 순서를 정한다.‘한 번 갈 때 뽕 뽑아야지’라는 마음을 굳게 다진다. 그 다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한 스케줄 표를 짠다.


    이민재씨(의 여행 준비는 보통의 방식과는 다르다.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하고 나면, 바로 그 나라의 언어 공부에 돌입한다. 문제집을 파헤치고 동일한 영화를 10번 이상 본다. 공부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여행경비를 충당할 만큼 돈이 모이고, 어느 정도의 일상대화 수준에 이르면 그제서야 배낭을 싼다.

     


    역마살이 낀 아이 
     여행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부터 좋아했어요”라는 시시한 대답이 나왔지만 그의 여행기는 긴장감 넘치는 한 편의 단편영화였다.

     
     그의 여행사랑은 정말 타고난 것이었다. 그는 주위에서 ‘역마살이 꼈다’고 할 정도로 많이 돌아다니는 아이였다. 어렸을 적, 툭하면 엄마 손을 뿌리치고 이 곳, 저 곳을 쏘다니는 바람에 그의 부모님은 잠시도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그러다 7살 때, 부모님의 눈길을 피해 첫 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았던 저금통을 한 손에 들고 영등포 역에 도착했다. 장장 40여분이 걸렸다. 겨우 도착한 곳은 수색역이었다. 떡꼬치를 한 손에 쥐고 홀로 자축파티를 열었다. “첫 여행을 축하합니다.”

     그는 그 후로도 계속 떠돌아다녔다. 서울 여행을 시작으로 동해, 서해, 그리고 부산까지 여행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는 처음으로 국내를 떠나 외국의 땅에 첫 발을 내딛었다. 가족과 함께 중국을 방문했다. 그의 가족은 가이드의 안내대로 여행했다. 구경하고, 사진찍고, 이동하고. 짜여 있는 순서대로 움직이는 속전속결식 여행이었다.


     ‘여행’ 자체를 마냥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여행은 따로 있었다. 그 나라만의 세상살이와 사회상 등을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처럼 느끼고 싶었다. 현장을 느끼지 못하고 돌아온 그는 허무함만을 느꼈다. ‘현장을 느끼고 말리라’는 다짐과 함께 그는 여행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그만의 출국 수속 밟기 
     ‘현지인처럼 여행 즐기는 법’이라는 지침서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시중에 있는 책들이라곤 그 나라의 ‘좋은 점’을 부각시킨 홍보 책자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머리를 끙끙대고 있을 때, 순간 되살아난 기억이 그를 외국어 공부로 이끌었다. 몇 년 전, ‘하이’가 아닌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걸어 온 외국인에게 친근감이 들었다. 현지에 있는 외국인들도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지지 않을까 싶어 그는 여행 안내 책자 대신 일본어와 중국어 책을 샀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5년을 공부했다. 학원은 그에게 맞지 않아 한 달 만에 뛰쳐나왔다. 문법과 단어의 끊임없는 주입은 언어의 매력을 퇴색시켰다. 그렇게 그는 독학을 시작했지만 그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수험생 시절에는 죽을 만큼 어려웠던 수능 공부가 차라리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학습 속도는 점점 더뎌졌고 그도 모르고 책도 모르는 질문은 쌓여만 갔다. 

     그는 일단 문제집은 뒷전에 미뤄뒀다. 여행에 관한 글들을 외국어로 읽는 연습을 시작했다. 관심 있는 분야를 읽다보니 모르는 단어, 문법, 표현을 알아서 찾아보게 됐다. 그 후, 그는 콘텐츠를 택했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그 나라의 대중 매체에는 책에선 찾을 수 없었던 특유의 매력이 있었다. 현지 사람만의 독특한 뉘앙스를 익힐 수 있었다. 어느 순간 그들의 언어가 들렸다. 그때부터 그의 실력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온 그는 여행 경비를 직접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서빙에, 야간 주차 아르바이트에 공장 아르바이트까지 나갔다. 현재 그의 직업은 신라호텔 면세점 판매직원. 특성상 외국인이 많이 오고가는 곳으로 일자리를 구했다. 그는 하루 온종일 손님을 마주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서있는 탓에 그의 발은 퉁퉁 부을 지경이다. 하지만 외국인을 맞이할 때면 그가 바라던 여행지의 풍경이 연상된다.



    이민재의 현장 스케치 
     겨우 고2, 18살의 나이였다. 철없는 남자 셋이 일본 땅을 밟았다. 고등학생들의 필수 코스였던 여름방학 보충 수업까지 제쳤다. 무계획·무일푼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들은 마냥 신났다. 보이는 것에 이끌렸고 들리는 것에 혹해 구경하고 체험했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날은 어두워졌지만 무계획 여행이었던 터라 숙소도 정하지 못했다. 가로등이 하나 둘 꺼지는 시간에도 그들은 무서운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인적이 드문 골목만 이어졌다. 이상한 낌새를 채지도 못할 만큼 순수했던 그들은 다행히 숙소 하나를 잡아 내일을 기약했다. 다음 날, 돌아다닐 채비를 끝내고 나와 보니 그 곳은 다름 아닌 유흥가였다. 그는 마음을 졸이며 빠르게 그 곳을 빠져나왔다. 

     제대로 여행 맛을 본 그는 곧바로 그 다음 여행지로 출발했다. 평소 갈고 닦은 중국어 실력을 믿고 대만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 대만은 중국어와는 다른 ‘민난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는 당황했다.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의 심리를 단박에 눈치 챈 현지 상인은 그를 속였다. 보통 버스비보다 3배가 넘는 값을 불렀던 것. 사기를 당한 것을 깨달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몇 시간 후 그는 쾌재를 불렀다. “또 한 번 새로운 경험을 하는구나!”



    우물에서 벗어난 개구리  
     “우리는 참 좁은 세상에서 좁은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지위에, 학벌에 얽매여 사는 것이 현재 우리네 모습이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나라가, 그곳에서 우리가 모르는 무수히 많은 일들과 우리와 다른 수많은 사고방식이 존재한다. 최고의 전문직으로 대우받는 의사는 프랑스에서는 병을 고쳐주는 착한 아저씨로, 그 어렵다는 고시를 통과해 겨우 얻어낸 변호사라는 직함은 미국에서는 부르면 5분 안에 출동하는 서비스직으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사회 중 하나에 불과한 이곳에서 겉모습을 포장하기 위한 경쟁은 부질없다고 했다. 


    그는 겉보다 안을 가꾸기로 결심했다. “인생을 살아가고 80살쯤 되어 늙은이들끼리 자기자랑으로 소일할 때 저는 경험으로 1등을 차지할 거예요.” 여행을 통해 친구를 만들고 세상살이를 경험하고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는 그는 직장을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닌 인생을 위해서 사는 삶을 살고자 한다.

    송은지 기자 ilnrv@cauon.net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