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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심과 이타심의 공생관계
    Essay/Essay 2018. 11. 18. 16:56

    /소심한

    비밀

    살만해진 진희가 말했다. 아프리카나 중남미에 사는 가난한 아이한테 후원해볼까 싶다고. 채원은 급작스레 튀어나온 대화 주제에 마시던 술잔을 내려 놓았다.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은 표정으로 진희를 응시했다. 생각지도 못한 채원의 반응에 멋쩍은 웃음을 지은 진희는 자신감을 잃은 투로 중얼댔다.




    "아니 뭐, 원래부터 생각은 있었어. 경제적 여유가 없었을 때야 뒤로 제쳐둔 것 뿐이고... 이제는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건데..."


    채원은 그래, 네 마음이지 뭐, 왜 이렇게 눈치를 봐, 라고 말하곤 한동안 잔에 머물러 지루했을 술을 비웠다.


    말은 퉁명스레 했지만 진희의 속마음을 들은 채원은 놀랐다. 번 돈은 모두 저축한다는 철칙과 지출은 적을수록 좋다는 신념을 만날 때마다 몸소 보여주던 진희였다.


    진희가 취직한 뒤 채원은 진희와 단 한번도 저녁을 먹은 적이 없었다. 30분만 추가로 근무하면 법인카드로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진희는 30분 일찍 출근하거나, 30분 늦게 퇴근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무조건 고르기 시작했다. 채원한테만 해당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녁 약속이 있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본인은 저녁을 이미 먹었으니 만약 너가 밥을 먹지 않았다면 함께 식당으로 들어가 기다려’만’ 주겠다던 그였다. 참나. 어이가 없었지만 진희기에 감내했고 어느새 버릇처럼 끼니는 해결하고 나섰다. 이후의 행선지는 항상 봉구비어였다.






    /처음,

    그리고 결과

    가난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가난했던 사실만이 지금의 진희를 빚어낸 건 아니다. 그의 상처를 더욱 곪아가게 만든건 가난한 채원을 대하는 주변인들의 태도였다. 진희의 기억 속에서 상처의 시발점은 그날이었다. 아마도 한성 중학교 1학년 2반의 좀 산다는 그 친구들은 늘 같은 옷을 입고 오는 진희가 불쌍했나보다. 그렇다고 무식하게 놀리지는 않았다. 영악할 만큼 영악해진 그 친구들은 무시를 선심으로 가장하기에 능했다.


    “너 옷 없어? 나 이번에 엄마랑 백화점 가서 새 옷 샀는데… 나 입던거 너 줄까?”

    “아 나도! 나 집에 안입는 옷 진짜 많은데, 너 줄까?”


    나도, 나도, 나도. 주변이 웅성댔다. 선심인지 무시인지, 진희는 헷갈려 하며 대답했다. 됐어. 진희는 그 애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빨리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애들이 진희의 집까지 쫓아왔다. 뒤를 밟혔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땐 이미 늦었다. 겉이 추레한 한성 빌라의 지하로 들어서는 진희의 뒷모습을 향해 ‘너 여기 살아?’라는 목소리가 들렸을 때 그는 고개를 획 돌렸다.




    “내일 옷 갖다줄게!”


    진희의 놀란 눈 안에 담긴 살벌함에 그 친구들은 서둘러 되돌아갔다. 반쯤 지하도 아닌 완벽한 지하로 연결된 시멘트 계단을 하나씩 밟아 현관으로 들어서던 진희는 삐져나오는 눈물을 참아내려 애썼다. 코에서는 거칠고 뜨거운 바람이 뿜어져 나왔고 양쪽 어금니에서는 위아래에서 누르는 강력한 힘에 못 이겨 끼익 소리가 삐져나왔다.


    고등학생이 된 진희는 학생복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계기는 엄마였다. 진희의 엄마는 본인의 삶으로 버거운 사람이었다. 김밥천국 주방일을 하며 겨우 먹고 살 돈을 손에 쥘 뿐이었다. 진희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 만큼 크자 김밥 몇 줄 마는 걸로 중학교보다 비싸진 고등학교의 등록비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말을 한 주에 세번쯤은 꺼냈다. 급식비나 용돈 정도는 내가 벌게. 진희는 엄마의 은근한 바람을 들어주기로 했다.


    주말에 4시간. 시급 3200원. 한달에 10만원이 살짝 넘는 돈으로 진희는 급식비와 용돈을 충당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하루살이의 세계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에 매진하던 진희가 매달 필수로 사야 하는 문제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급식비가 밀렸다. 처음엔 급식비 미납 명단에 포함돼 선생님의 입에서 크게 호명되는 순간이 창피했지만 나중엔 급식비를 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미납 명단에서 자연스레 제외될 때 비참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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