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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늠할 수 없는: 술 한 잔에 개워내지지 않는 인생의 하중 술에 취해 지그재그로 걷는 와중에도 저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의 형체가 또렷이 들어왔다. 아버지였다. 가슴 안쪽에서 심장이 크게 낙하하는 느낌이 들면서 잃어가던 정신이 순식간에 돌아왔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똑바로 걸어야만 했다. 온몸을 감싼 알코올 향도 사그라들어야만 했다. 긴 다리를 이용해 휙휙 걸어오는 그의 속도는 빨랐다. 어떤 조치를 취할 겨를이 없었다. 금세 내 앞에 도달한 아버지는 당신 앞에서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나를 살며시 안았다. 걱정이 내포된 손길과는 다르게 표정은 붉으락푸르락했다. 어느 누구에서도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했구나. 미약하게나마 깨달으려던 때였다. "유채원, 니 술 마셨나?" 난생처음 보는 얼굴에 기가 죽어가던 .. 2018. 9. 24.
도쿄 블루보틀, 어디까지 맛봤니? - (2) 도쿄 블루보틀, 어디까지 맛봤니? - (2) 블루보틀 롯본기점큰 건물이 즐비하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찬, 광화문과 흡사한 롯본기에 블루보틀 3호점이 있다. 롯본기 역에서 내려 5분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역세권에 자리를 잡았지만 큰 길가에서 살짝 안쪽이라 푸른빛 머금은 자연과 함께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미니멀리즘과 슬로우라이프를 표방하는 블루보틀의 브랜드 이미지가 가장 잘 표현된 아시아 지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롯본기점의 인테리어는 간결하다. 화이트톤의 실내 컬러에 나무 재질과 스테인리스 조합으로 이뤄진 롯본기 지점에서 열댓개 정도의 의자로만 구성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역시나 콜드브루와 뉴올리언스를 주문했다. 아쉽게도 맛은 아오야마점과 비슷하게 특출나지는 않다. 맛을 생각하고 방문하기에는 .. 2018. 9. 21.
도쿄 블루보틀, 어디까지 맛봤니? 도쿄 블루보틀, 어디까지 맛봤니? 지점별 특색을 파헤친다! 도쿄에 갔다. 평소 발길 닫는 대로 여행하는 스타일이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들리고 말겠노라 다짐한 곳이 있었다. 커피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그 이름, 블루보틀(BLUE BOTTLE)이다. 블루보틀은 온전히 맛으로 이름을 알렸다. 로스팅 한지 48시간 이내의 원두를 이용해 핸드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내린다. 싱글 오리진과 블렌디드 원두의 특성에 맞는 절정의 풍미를 발견하고, 핸드드립 방식에 따른 최상의 맛을 찾아 커피가 주는 최고의 경험을 선사한다. 고집이 만들어 낸 맛. 2002년, 샌프란시스코의 5평 남짓한 창고에서 시작해 2015년, 미국 국경을 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미국 밖 지역까지 유명해진 이유다. 블루보틀.. 2018. 9. 21.
느닷없이 제주로 떠난 당신에게 - 어느 혼행러의 추천 숙소 느닷없이 제주로 떠난 당신에게 - 어느 혼행러의 추천 숙소 플레이스캠프에서의 하룻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던가. 쏟아지는 햇볕을 피할길 없는 8월의 중턱, 어차피 쬘 햇볕이라면 드넓은 수평선이라도 보겠다는 심정으로 제주행을 택했다. 즉석으로 비행기표를 산 뒤 며칠만에 제주에 도착해버렸지만 “내일 뭐하지?”라는 고민이 필요없는 곳.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옹골찬 프로그램으로 급휴가를 결정한 여행객에게 다채로운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 나처럼 아무 준비도 없이 여행길에 오른 당신을 위해 플레이스 캠프에서의 하룻밤을 권한다. 왜냐하면 플레이스 캠프는 “NOT JUST A HOTEL”니까. 08:30 AM - 요가 잠에서 깨자마자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통해 보이는 성산일출봉을 바라봤다. 자연 그 자체의 뷰.. 2018. 9. 21.
혼술하는 그대여, 나를 잊으셨나요. 혼술하는 그대여, 나를 잊으셨나요. 편의점에서 만날 수 있는 위스키 소개 적당히 지쳐서 적당한 힘이 남아 있던 그날 저녁. 술 한잔은 해야겠는데 묵묵하게 냉장고 한켠을 지키는 맥주가 살짝 지루해졌달까. 그렇다고 소주를 마실 무드는 아니고, 막걸리는 무겁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떠오른 그 이름, 위스키! 혼술에 위스키라. 예민한 친구라 보관하기도 까다롭고, 식사용 안주를 곁들이기에도 애매하고, 최종적으로 비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기엔 아쉬워 길가에 서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검색어는 ‘위스키 혼술'. 결과가 빈약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고민이 무색하게도 뉴스가 쏟아졌다.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식사로도 괜찮고 안주로도 좋은 편의점 음식을 곁들여 위스키 술상 한번 거나하.. 2018. 6. 1.
2017년과 2018년의 건널목을 성북동 한옥에서 자주는 아니지만 대략 두달에 한번씩은 가는 곳, 책바(Chagbar)에서 『20킬로그램의 삶』이라는 책을 접했다. 여기서 작가의 이른바 몰상식한, 아니 오랜 친구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장거리 여행을 떠나버린 당일 헛헛한 마음에 작가를 불러낸다. "야, 27일에 월차 내고 나랑 놀자!" 남자친구가 생긴 이후 연락두절 상태와 다름 없었던 그녀의 친구가 남긴 메시지를 작가는 괘씸히 여긴다. 본인 옆을 지키던 남자친구가 사라진 후 곧바로 본인을 찾자 괘씸죄를 적용해볼까 했으나 작가는 다시 친구의 부름에 응하기로 마음 먹는다. 친구의 급작스런 제안에 그들은 하루짜리 서울 여행을 떠난다. 그들의 선택은 북촌의 한옥. 31페이지에서 38페이지까지를 읽고 책을 덮은 후, 나 역시 곧바로 보람이를 소환했다. "야, 우리 .. 2018. 5. 7.